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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동안의 잊지 못할 이야기들

캐세이퍼시픽은 창립 75주년을 기념하여 저희 항공편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장소, 기회에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경험을 공유해 달라고 고객분들께 요청했습니다.

Jameson Gong
테이크아웃 코미디(TakeOut Comedy)의 창립자이자 코미디언

홍콩계 미국 코미디언 Jameson Gong(Jami)은 “제 가족은 캐세이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Anna가 특히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수년간 캐세이 항공편을 이용하셨어요. 홍콩에서 태어나셨고, 뉴욕에 연고가 있으십니다. 두 곳을 왕래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한 곳에 3~4개월씩 계시지요. 오랫동안 프리미엄 일반석을 즐겨 이용하셨어요. 네, 화장실 근처 좌석이요!”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심해지면서 모든 것이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Anna가 미국에서 혼자 항공편을 타고, 검사 결과를 받기 위해 14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Jami는 어머니가 괜찮으신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캐세이퍼시픽은 온 가족이 오랫동안 함께 해온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Jami는 Facebook의 HK Quarantine Support Group에 글을 올려서 비행편에 탑승한 모든 사람에게 83세의 어머니를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결과 Jami가 “올해의 댓글”이라고 부르는 결과가 탄생했습니다!

CX843 항공편의 승객부터 홍콩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승객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마음을 모아 Anna를 지켜보았습니다. 꾸준히 사진을 올리고 600개의 댓글을 업데이트하여 Jami의 어머니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도록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듯 그 결말을 기다렸어요. 어머니가 저를 안아주는 것을 기다렸죠! 요즘처럼 정신 없는 시대에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라고 Jameson은 말합니다. “누군가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돕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코로나 펜데믹의 기분 좋은 상징과 같은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Tom Chadwick
비즈니스 리스크 및 연속성 매니저

“목요일에 은행 대출을 받고, 금요일에 항공권을 예약하고, 토요일에 출발해서 1998년 7월 5일 일요일에 홍콩에 도착했는데, 그 때가 바로 카이탁공항이 영구 폐쇄되기 몇 시간 전이었습니다.”라고 Tom Chadwick은 말했습니다. 소박한 군용 활주로에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바쁜 허브 공항이 되기까지 연간 3천만 명의 승객과 150만 톤의 화물을 취급하는 곳으로 거듭난 캐세이퍼시픽의 예전 홈 베이스는 한 세기 최고의 순간 누린 공항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리에 남았습니다.

Chadwick은 그 때 18살 밖에 되지 않았고, 카이탁공항의 폐쇄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한 번도 홍콩을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공항이 다음 주에 문을 닫을 것이라는 글을 읽고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콩으로의 첫 여행이었지만, 그의 마지막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 10년 동안 매년 홍콩을 방문했고, 결국 그의 아내를 만나 홍콩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도착한 그 날 홍콩과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캐세이퍼시픽과 함께한 첫 번째 비행과 항상 연관 짓게 될 겁니다. 그 후 홍콩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새로운 첵랍콕공항은 그 때만큼 흥미진진하지는 못했습니다.”

Michelle Lau
호스피탈리티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25년도 넘은 일이긴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Michelle Lau는 캐세이퍼시픽과 함께한 어린 시절 항공편에 대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가 매혹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바로 ‘Barry White의 보딩 뮤직'입니다. Walrus of Love가 작곡한 오케스트라 작품 Love’s Theme은 수천 명의 홍콩인이 아직도 기억하는 추억입니다. 캐세이퍼시픽이 홍콩에서 런던까지 최초의 직항편을 론칭한 후, 이 곡은 Lau가 1990년대 초반 영국으로 홀로 오가는 여정과 함께 한 사운드트랙이었습니다.

“여행을 처음 했을 때 14살이었어요.”라고 Lau는 회상합니다. “아직 카이탁공항에서 비행기가 뜰 때였는데, 매번 만석이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하지만 승무원들은 항상 친절했고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항상 간식을 가져다주곤 했어요.” 지금까지도 “캐세이퍼시픽 항공편에 탑승하면 이미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Bonnae Gokson
사업가, 작가 겸 패션 전문가

홍콩의 집과 유럽 및 미국의 학교를 오가는 어린 시절을 보낸 Bonnae Gokson에게 “인터내셔널 제트족”이라는 용어는 잘 어울립니다. 그 후 샤넬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일하면서 중국 전역으로 단거리 여행을, 파리, 런던, 뉴욕, 밀라노로 장거리 여행을 했습니다. 이후 홍콩에서 가장 화려한 바와 레스토랑 중 하나인 세바(Sevva), 미스 비 베이커리(Ms B’s Cakery), 그리고 하이엔드 케이크 매장 체인인 세라 비(C’est La B)를 설립했습니다.

그녀가 업무와 개인 여행으로 마르코 폴로 클럽 골드 회원 자격을 받은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Gokson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항공편은 그녀의 커리어 전성기 때였습니다. “두 번째 책인 Weddings, Butterflies and the Sweetest Dreams 출간을 위해 일등석을 타고 뉴욕에 갈 때였습니다. 전 세계의 정교한 케이크와 눈길을 사로잡는 웨딩 이미지로 장식한 화려한 커피 테이블 책이었어요. 저에게 중요한 항공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기내 침대의 이불 밑에 누워 크룩 샴페인을 마시며 실버 스푼으로 캐비어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출간 파티는 메디슨 에비뉴에 있는 제 친구 Vera Wang의 웨딩 부티크에서 열렸기 때문에 숙면이 필수였습니다.”

Billy Semple
전 프로 축구 선수

“우리는 글래스고의 Sauchihehall Street에 있는 중식당 Lucky Star 위층에서 일했던 중국 여행사 직원을 통해 항공권을 예약했습니다.”라고 프로 축구 선수 Billy Semple는 회고했습니다. 그는 1974년 홍콩 레인저스 축구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 홍콩으로 이사했습니다. 당시에는 캐세이퍼시픽이 런던 직항편을 운항하지 않아(1991년 전에는 없었음) 바레인이나 두바이를 경유해야 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부터 총 24시간 가량 소요됐습니다.

“착륙 후 항공기 계단을 내려가서 타맥으로 포장된 도로를 가로질러 터미널 건물로 들어가 현지 언론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던 것이 기억납니다.”라고 Semple은 말했습니다. 이는 홍콩 국내 축구 황금기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고, 새로운 투자와 신선한 외국 선수의 수혈로 매주 최대 28,000명의 관중을 홍콩 스타디움으로 끌어들였습니다. 1966년 영국 월드컵의 주장이자 Semple의 이전 팀인 San Antonio Thunder에서 동료였던 Bobby Moore,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웅 George Best 같은 스타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세계 반대편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Semple에게 도박과 같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카이탁공항에서 비행기에 내리고 결코 뒤돌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어요.”

Dilip Badlani
투자 전문가

“캐세이퍼시픽의 뉴욕 직항편은 저에게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라고 2004년 홍콩발 JFK행 직항편이 정기 운항을 시작했을 때 뉴욕에서 일했던 Dilip Badlani는 말합니다. Badlani의 여정은 미국과 홍콩 간 번창하는 교역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는 수년간 이 노선을 이용했던 수백만 명의 승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가 홍콩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 집처럼 편안한 항공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캐세이퍼시픽의 서비스는 세계 정상급이고, 음식은 훌륭합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최고 수준이고, 라운지는 훌륭한 서비스를 자랑합니다. 업무적인 관점에서 볼 때, 스케줄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회의를 위해 홍콩에 도착하여 주말을 위해 금요일에 돌아오는 오전 1시 일요일 항공편을 종종 이용했습니다. 업무차 동남아시아 행 비행편을 이용할 때도 저는 캐세이퍼시픽의 홍콩행 항공편을 선호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고 직항편 서비스는 어린 딸들과 동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2018년에 홍콩으로 돌아왔지만 계속 뉴욕을 방문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그 구간을 50번은 비행한 것 같습니다.”

Obet Mazinyi 
캐세이퍼시픽 보잉 B747-400 기장

여행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는 조종사일 것입니다. 물론 승객과 항상 마주치지는 않지만요. 보잉 B747-400 여객기의 기장이었던 Obet Mazinyi는 수천 명의 승객을 태우고 전 세계를 운항했습니다. 그들이 가족, 파트너, 친구를 만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 과정에서 잊지 못할 많은 순간과 함께했습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약 16년 전 발리에서 홍콩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에서 Obet는 의학적인 문제가 있는 승객 한 명을 들것으로 운송해야 했고 승무원은 승객을 편안하게 돌봐 주기 위해 더욱 노력했습니다.

“저희는 그 승객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탑승을 보류했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 승객은 이미 승무원의 훌륭한 보살핌을 받은 데다가 기장이 직접 와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는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 심지어 기장까지 매우 세심하게 배려해 주어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캐세이퍼시픽 직원들과 승무원들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저는 그분께 배려는 저희가 승객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받았던 보살핌에 대해 그분은 놀라움, 기쁨, 감사를 표시했고, 저는 그 일을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이런 순간들은 캐세이퍼시픽이 얼마나 특별한지, 그리고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상기시켜 줍니다.”